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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사람을 살렸다. 의도치않게 한 사람을 살렸다.
의미는 내 안에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대부분의 일반적인 러너는 "이번에는 이 정도 시간으로 달리자"라고, 미리 개인적 목표를 정해 레이스에 임한다. 그 시간 안에 달릴 수 있다면, 그 또는 그녀는 '뭔가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으며, 만약 그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뭔가를 달성하지 못했다'라는 것이 된다. 만약 시간 내 달리지 못했다고 해도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실력을 발휘했다는 만족감이라든가, 다음 레이스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면, 또 뭔가 큰 발견 같은 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하나의 달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끝까지 달리고 나서 자신에 대한 자부심(혹은 프라이드와 비슷한 것)을 가질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것이 장거리 러너에게 있어서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러나 만약 어떤 특정한 라이벌이 어떤 사정으로든..
경솔하게 판단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건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너를 향해 하는 말이다. 사람의 한 모습만 보고 경솔하게 판단하지 마라, 그것도 나라는 제 3자가 묘사하는, 심지어 단점을 말한 것을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 다른 사람은 다 그래도 너는 그러면 안되는 직업이 아닌가. 대단히 지혜로운 어른을 바랬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보다 더 미성숙하고 아흔을 바라보는 할아버지보다 더 꽉 막혔을 줄은 몰랐다. 너는 부족한 점 투성이인데 그 모든 것을 열거하며 짚어줄만큼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인물은 아니니, 오히려 이제는 상종하고 싶지도 않으니 그것은 생략하기로 하고. 아무튼, 나이값 좀 해라.
애정이 식은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나태주 시인의 이라는 시가 있다. 다음과 같다.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을 잘 참아주면서 처음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예쁘게 느꼈던 것들이 미운 것으로, 좋게 생각했던 것들이 진절머리 날 정도로 싫게 느껴진다면 거기서 사랑은 끝이다. 싫은 것을 더 이상 이 사람의 유별난 습관 정도로 웃어넘길 수 없다면 거기서 사랑이 끝임을 느낀다. 끝은 뮤지컬 하나가 끝나듯 그렇게 확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올 때 은행잎들이 바닥에 떨어지듯이 그렇게 서서히 찾아온다. 어느 순간엔 하나 둘 떨어지던 게 바람 한번 불면 헤아릴 새도 없이 바닥을 노란빛으로 덮어..
우리의 만남이 재미가 없다면 그건 만약 너와 나 사이의, 혹은 그보다 많은 우리의 대화가 재미가 없다면,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 재미가 없다면 그건 누구의 탓일까? ​굳이 누구 탓인지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문제지만 굳이 따지자면 서로가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이 있다. 모두 같은 비율의 책임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세 명이라면 33.3333333...%의 책임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둘이라면 50%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 ​그런데 왜 나는 100% 내 책임이라고 느끼고 있을까. ​100%까지는 아니라도 왜 내 책임이 더 크다고 느낄까. 나는 이 사람을 재밌게 해줄 의무가 있는가, 없잖아. 내가 코미디언도 아닌데. 재미가 없다고 탓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만나서 뭔가 어떤 사고가 발생해서 굳이 누구의 죄인지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
내 마음인데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습니다. 내 마음인데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만난 사람과 보낸 시간이 재밌었는지, 어디가 재밌었는지, 어떤 게 싫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상대의 표정과 말만이 기억에 남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건지,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젯밤까지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가질 않더군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내가 지금 당장 먹고 싶은 게 모카인지 라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메리카노일 수도 있겠군요. 에스프레소가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지만 그래서 뭘 시켜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마음인데도 정말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어요. 그냥 모르겠습니다. 왜 나는 내 마음도 모를까요.
주고 주고 주고 요즘 상담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두 차례 했는데 처음에는 좋았다가 두 번째는 별로였다가 그런다. 세 번째는 어떨지. ​상담을 받게 되면 나는 아주 큰 것을 내놓아야 한다. 남들에게는 하지 않았던,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털어놓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아야 한다. ​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도 답해야 한다. 물론 싫다고 하면 강제로 말하게 하지는 않겠지만, 자꾸 싫다고 거절하고 감추다 보면 상담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말하려고 한다. ​ ​나는 예전부터 감추는 게 능숙하고 익숙했던 사람이라서 상담을 할 때, 그러니까 뭘 좀 펼쳐놓고 보여줘야 할 때도 몇 개씩은 손에 쥐고 보여주질 않는다. ​타인에게 굳이 솔직할 필요야 있겠냐마는 나에게마저도 솔직하지 않아지는 것 같아서..
너는 너에게 항상 말해줘야 한다. 뭐가 그렇게도 걱정스러운 것일까. 아침에 심장의 쿵쾅거림을 느끼며 불쾌하게 일어나는 건 왜 그럴까. 월요일과 화요일이 때로 두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자꾸 주눅이 들고 아는 사람에게 온갖 반가움을 끌어와 인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눅들 필요도 자신감을 잃을 필요도 없는데 그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너는 그 모든 걸 너무 많이 잃어버렸다. 개미같은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는 것도, 자꾸만 공손하게 굴려고 말이 길어지는 것도. 솔직히 그런 건 다 별로지만 너의 매력쯤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영화 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 자신감 없이 수업시간에 아는 내용을 안다고 손들지 못하고 급식시간에 눈을 또르륵 굴리며 혼자 온갖 외로움은 다 먹고 있는 표정. 그게 지금 너의 모습과 비슷하고, 한때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