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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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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격당하면서 실격시키는 사람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최근 읽기 시작한 책, 김원영 변호사가 쓴 의 서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인종적 성적 소수자, 나이가 많은 사람들, 장애는 없지만 배제되고 소외되기 쉬운 외모를 가진 사람들의 경험을 장애인들은 얼마간 다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장애인들이 존중받고 매력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표현해낸 역사와 이론적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면, 우리 중 누구도 ‘잘못된 삶’이라고 규정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격당한 자들’을위한 ‘변론’같은 이야기들을 하며 생각해볼 거리를 끊임없이 던져주는 책이다. 주로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그 이유는 위 구절에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잘못된 삶’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같은 책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요컨대 ‘잘못된 삶’이란 ..
어쩔 수 없는 전쟁이었다. <군주론> ​“어쩔 수 없는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며, 무력 이외에는 그 어떤 희망도 없을 때 무력 또한 신성한 것이 된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갈등을 항상 피해오던 내가 최근에 하기 싫은 이야기들을, 쌓여서 곪아 터질 지경인 속마음을 조금 이야기했다. 지금 보기에 우리의 관계는 조금 멀어진 것 같다.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 상대가 나에게도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서 내 마음도 아프고 가끔 ‘차라리 말을 하지 말걸 그랬나’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때마다 나는 저 문장을 읽는다. 원래 티투스 리비우스의 9권에 나오는 내용을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에서 인용한것이다. 저 문장을 읽으면서 생각한다. 내가 만일 그말도 하지 않고 품고 있었더라면 나는 정말 죽었을 수도 있을 거라는 걸. 결과적으로 내 마음..
의미는 내 안에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대부분의 일반적인 러너는 "이번에는 이 정도 시간으로 달리자"라고, 미리 개인적 목표를 정해 레이스에 임한다. 그 시간 안에 달릴 수 있다면, 그 또는 그녀는 '뭔가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으며, 만약 그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뭔가를 달성하지 못했다'라는 것이 된다. 만약 시간 내 달리지 못했다고 해도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실력을 발휘했다는 만족감이라든가, 다음 레이스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면, 또 뭔가 큰 발견 같은 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하나의 달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끝까지 달리고 나서 자신에 대한 자부심(혹은 프라이드와 비슷한 것)을 가질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것이 장거리 러너에게 있어서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러나 만약 어떤 특정한 라이벌이 어떤 사정으로든..
애정이 식은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나태주 시인의 이라는 시가 있다. 다음과 같다.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을 잘 참아주면서 처음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예쁘게 느꼈던 것들이 미운 것으로, 좋게 생각했던 것들이 진절머리 날 정도로 싫게 느껴진다면 거기서 사랑은 끝이다. 싫은 것을 더 이상 이 사람의 유별난 습관 정도로 웃어넘길 수 없다면 거기서 사랑이 끝임을 느낀다. 끝은 뮤지컬 하나가 끝나듯 그렇게 확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올 때 은행잎들이 바닥에 떨어지듯이 그렇게 서서히 찾아온다. 어느 순간엔 하나 둘 떨어지던 게 바람 한번 불면 헤아릴 새도 없이 바닥을 노란빛으로 덮어..
쫄보가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법 <지지 않는다는 말> <이것이 나의 다정입니다> 오늘 정말 받고 싶지 않은 전화가 걸려왔다. 이곳에서 걸려온 전화 자체가 싫다기보다(솔직히 좋진 않음) 전화를 건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이 좋지 않을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에. 아무튼 그곳에서 전화가 걸려왔고 나는 이 전화가 끊겨 부재중으로 남기를 기다렸다. 그 이후 두려움은 시작되었고, 고민 또한 시작되었다. 전화를 다시 걸것인가, 말것인가? 나는 정말로 진짜로 엄청난 쫄보다. 그래서 누군가는 코웃음을 치고 가볍게 여길 일들을 크게 느낀다. 그만큼 두려움도 크다. 아무튼 그래서 두려움이 컸다. 소장이 뱀처럼 내 뱃속안에서 꾸불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좀 과장해서 말했지만 비슷하다. 이럴 때, 이렇게 괴로움이 조금이라도 덥쳐오면 나는 이성적인 나를 소환한다. '이성적인 나'가 '쫄보 나'에게 말한다. "어차..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한다. <지지 않는다는 말> 추석 전주를 쭉 쉬었다. 해야 하는 일이 없이 쉬었다. 내 시간을 가진 거다. 그리고 추석주. 그 주도 쭉 쉰다. 그러니까 나는 남은 9월 동안은 계속 쉬다가 10월이 되면 할 일이 생긴다. 스위치를 끄고 켜듯 없다가 확 생긴다. 그렇다면 이 2주 동안은 뭘 할까? 나와 같은 휴식시간을 얻은 사람들은 주로 여행을 간다고 한다. 해외로 가든 국내로 가든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이렇게 긴 장기 휴가를 얻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럼 나는 뭘 했을까? 일단 2주의 휴가 중 첫 주는 단조롭게 살았다. 읽고 쓰고 쉬고 놀고. 30분 동안 운동도 하고. 도서관 아니면 집이라는 아주 단조로운 생활을 했다. 30분은 운동장에 있고. 그래서 누군가 보기에는 시간을 허비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야, 너는 시간이 그렇게..
강자의 약점은 매력, 약자의 약점은 화살 <이것이 나의 다정입니다> 유튜브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라이브를 감상하다가 댓글을 쭉 살펴봤다. 노래실력을 칭찬하는 댓글, 수려한 외모를 칭찬하는 댓글, 그리고 어쩜 이름부터가 이렇게 멋있냐며 그 사람의 모든 부분을 아끼는 듯한 분위기가 풍기는 댓글도 있었다.어떤 연예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OO은 낯도 엄청 가린데요. 너무 귀엽지 않아요?’ 그 말을 듣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나도 낯 무진장 많이 가리는데. 그냥 그 사람이 낯가리니까 귀여워보이는 거지. 힝. 다른 사람이 그러면 소심한 찌질이라고 생각할거면서!’라는 찌질한 생각을 했다.그렇다. 나도 그렇지만 다들 그런 것 같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의 약점까지도 귀여워보이고 인간미가 넘쳐 보인다. 상대가 내게 약자가 아니라 강자가 되었을 때..
너의 칭찬, 너의 비난 내겐 효과 없길 <잘돼가? 무엇이든> 남한테 칭찬을 받으려는 생각 속에는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다. 혼자 의연히 선 사람은 칭찬을 기대하지 않는다. 물론 남의 비난에도 일일이 신경 쓰지 않는다. 작가 이경미의 에 나오는 구절이다. 솔직히 맞다.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탁 치고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그런 구절인 건 맞다. 그런데 저 구절을 읽으면서 ‘아, 나는 아직도 혼자 의연히 서지 못했구나.’를 깨닫고 금방 시무룩해졌다. 나는 항상 ‘그렇지 않은 척’을 한다. 남한테 칭찬받는 것 따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척. 남한테 의지 따위 하지 않는 척. 남의 비난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척. 근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남한테 칭찬받는 것? 너무 기분 좋다. 진짜 좋다. 내가 되게 대단한 사람 된 것 같고 그렇다. 남한테 의지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