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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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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하느라 나를 못 챙겨요. <잘돼가? 무엇이든> 1년간 쉬면서 내 일상은 '나를 챙김'의 연속이었다. 밥 지어다 나 먹이고, 나 있을 곳 깨끗하게 청소하고, 깨끗한 옷 입히려고 빨래하고 그렇게 나는 나를 챙겼다. 매일매일을. 이제 휴식은 끝나고, 그렇게도 좋았던 낙원을 떠나와버리고 다시 바쁜 일터로 돌아가 일상을 맞이한다. 그랬더니 나는 나를 챙길 수 없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먹는 건 급하게 구운 햄과 밥. 때로는 김과 밥. 잘 넘어가지도 않는 밥을 꾸역꾸역 삼키고, 때로는 시간에 쫓겨 급하게 삼킨다. 벌써 나를 챙기지 못하고 있다. 집도 돼지우리다. 옷가지는 이곳저곳에 널려 있고, 머리카락은 수북이 쌓여있다. '여기 나 말고 다른 털 달린 짐승이 사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나는 나를 챙기지 못하고 있다. 살림을 하는 것, 좋은 밥 지..
잘 알지만 잘 되지 않는 것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다 좋아한다고 하면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이다. 당신은 모두를 기쁘게 할 수는 없다. -파울로 코엘료 맞아요, 나는 모두를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맞아요, 맞아. 나도 잘 알고 있지만 자꾸만 기대를 하고 소망을 가진다.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라는 그 누구도 이루기 힘든 소망을. 모든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주변 사람들이 다 나에게 호의적이었으면,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나의 말이 모두를 즐겁게 했으면, 나의 말이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다른 사람들은 나와 대화하는 걸 즐겼으면, 마음이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그 누구도 이룰 수 없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이룰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기대를 건다. 그리고 그 소망을 ..
소설 속에는 인생이 있군요. <소설가의 일> 김연수 작가의 이라는 에세이를 최근에 읽었다. 소설에 대한 작가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읽으면서 예상치 못하게 인생에 대해 많이 배웠다. 소설 자체가, 그리고 소설을 쓰는 일은 어찌보면 인생과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솟아났다. 이 인생은 나의 성공과 실패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에 얼마나 대단한 걸 원했는가. 그래서 얼마만큼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느꼈으며 또 무엇을 배웠는가. 그래서 거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가. 다만 그런 질문만이 중요한 것이다. 인생이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이야기가 계속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이 질문에 대답해야만 하리라. 비극이란 주인공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끝나는 이야기를 뜻하는 것이지, 비관적인 결론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원하는 ..
사회 부적응자가 된 것만 같아. <어른이 된다는 건> 1년을 쉬고 심신을 편하게 하고 살다 보니 마치 사회 부적응자가 된 것만 같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면, 다수의 사람이 있을 때 말을 입 밖에 꺼내는 것이 두려워졌다. 왜 두렵느냐하면, 그 사람들의 생각이 무섭다. 나에 대한 그들의 판단, 생각이 어떨지 나는 평생 알 수 없을 테지만 그 생각이 무섭다. 부정적인 반응을 얻어내고 싶지 않음과 동시에 멋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공존하고 있는 탓이다. 그래서 자신감은 없어지고 목소리는 기어간다. 어느 순간에 말을 하게 되면, 내 생각은 기어가는 목소리로 표현되기 때문에 무시당하기 일쑤다. 그렇게 되면 나는 나의 음량이 아니라 나의 생각이 이상한 탓이라 오해하고 주눅 들고 위축된다. 그렇게 악순환이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왜 나는 모두에게 ..
사람을 대하듯이 에세이를 읽습니다. 에세이에는 그 사람 스스로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어떤 에세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주로 읽는 에세이에는 그 사람의 소소한 취향이나 일상, 생각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에세이를 읽다 보면 한 인간에 대해 점차 알아가는 기분이 들고, 동시에 그 사람의 깨달음이나 시련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곤 합니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람을 대하듯 에세이를 읽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요. 가끔 에세이를 읽다 보면 글쓴이가 나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정반대의 취향, 어떤 작품을 감상하고 난 뒤 호불호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 등 다양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중 일부 차이는 ‘허허, 우리 생각이 좀 다르군요.’하고 생각의 다양성을 깨..
적당한 답답함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 "싸우기도 하고 지랄도 하고, 그러면서 살아야 안 곪아요. 참는 게 능사가 아니야." 강세형 작가의 에 나오는 문장이다. 몹시 공감한다. 싸움과 지랄은 불필요하거나 성격이 거지같은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싸워야 할 때, 나의 지랄을 뽐내야 할 때는 필요한 것. 과거의 나는 착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싸움은 불필요하며, 참는 것이 미덕이고 참는 자가 진정한 위너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또 다 맞는 것도 아니다. ‘그때 참길 잘했어’라고 생각하는 순간도 있지만, ‘답답하게 왜 참았지? 왜 그때 맞서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며 그때가 또 오면 이렇게 하겠노라고 내 머릿속으로 공상을 할 때도 있다. 그러다 어느날 깨달았다. 드라마를 보면서 깨달았다. 비단..
수영장의 매력, 적당한 거리감 <아무튼, 계속> 예전에 쓴 글에서 수영장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서술했었다. 그 이후로 또다시 수영장의 매력에 대해 서술할 일이 없었는데 책을 읽다가 그 매력을 굉장히 와닿게 잘 묘사한 구절을 읽었다. 수영이 일상의 루틴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이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일본 영화에서처럼 독특하면서도 일상적인 풍경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세대도 성별도 제각각이고 하는 일, 심지어 이름도 모르지만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수영이나 날씨 이야기를 주고받는 데서 느낄 수 있는 적당한 온기, 그런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이웃의 존재는 오늘 하루도 평온하게 살았다는 왠지 모를 안락함을 준다. 적당한 거리감과 따뜻함이 공존하고, 그 속에서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오늘이 반복된다. 수영장은 ..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숨결이 바람 될 때> 이처럼 결정적인 전환점에서 요점은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이다. 가령 당신이나 당신의 어머니가 몇 달 더 연명하는 대가로 말을 못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치명적인 뇌출혈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낮은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시력 손상을 감수해야 한다면? 발작을 멈추려고 하다가 오른손을 못 쓰게 된다면? 당신의 아이가 얼마만큼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말하게 될까? 뇌는 우리가 겪는 세상의 경험을 중재하기 때문에, 신경성 질환에 걸린 환자와 그 가족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폴 칼라니티의 에 나오는 구절이다. 저자는 신경외과 의사로 일하면서 다양한 환자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