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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책

나는 실격당하면서 실격시키는 사람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최근 읽기 시작한 책, 김원영 변호사가 쓴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의 서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인종적 성적 소수자, 나이가 많은 사람들, 장애는 없지만 배제되고 소외되기 쉬운 외모를 가진 사람들의 경험을 장애인들은 얼마간 다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장애인들이 존중받고 매력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표현해낸 역사와 이론적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면, 우리 중 누구도 ‘잘못된 삶’이라고 규정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격당한 자들’을위한 ‘변론’같은 이야기들을 하며 생각해볼 거리를 끊임없이 던져주는 책이다. 주로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그 이유는 위 구절에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잘못된 삶’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같은 책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요컨대 ‘잘못된 삶’이란 착하지 않거나 나쁜 짓을 저지른 삶이 아니라 존중받지 못하는 삶, 하나의 개별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격당한 삶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아무리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하고, 장애나 질병이 심하고, 다수가 혐오하는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잘못된 삶’이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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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 ‘매력 자원’이 크게 부족한 경우에도 우리는 잘못된 삶으로 향하기 쉽다. 타인에게 아무런 매력도 보이지 못하는 사람은 도덕과 법규범에 의지해 일정한 존중은 받을 수 있지만, 진정으로 타인과 깊숙이 연결될 기회를 갖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누구나 ‘잘못된 삶’으로 치부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상대의 삶을 ‘잘못된 삶’으로 치부하는데 동참할 수 있다. 아마 모두가 그래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복합적인 마음을 느낀다. 어떤 때는 ‘실격당한 자’의 입장에서 읽기도하고 ‘실격시키는 자’의 입장에서 읽기도 한다. 입장의 전환이 시도때도 없이 벌어진다. 더불어 사고가 확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