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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책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 <더 스크랩>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하루키의 소설은 솔직히 말하면 내 취향은 아니고, 에세이를 정말 좋아한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나도 저렇게 나이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한 어른'은, 젊은이로 하여금 '아, 나도 저렇게 늙어야지.'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어른인데 그런 면에서 하루키는 성공한 어른이다. 하루키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에세이에서 묻어 나오는 생각과 생활 태도 같은 것만 봤을 때는 정말 존경스럽다.

아무튼 그래서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더 스크랩>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하루키가 <스포츠 그래픽 넘버>에 연재한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이 책 서문에 나오는 구절을 읽고 웃음이 났는데, 다음과 같다.

수준 높은 두 잡지 <에스콰이어>와 <뉴요커>의 엄정함에는 매번 감탄했다. 사 년 동안 매호 빠짐없이 읽고 있지만, 느슨함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 기획은 입체적이면서도 치밀하고, 에디터들은 우수하여 대충 쓴 원고가 없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 아주 시원스럽다. 이런 잡지를 계속 보다 보니 이제 일본 잡지는 당최 못 읽겠다. 일본 잡지는 어째서 그렇게 연재와 험담과 소문과 대담이 많을까?

하루키는 미국 잡지를 읽고 그 대단함을 이야기하다가 일본 잡지에 대해 비판하는데 말투가 웃겼다. 그러면서도 대단했다. 일본의 아주 유명한 작가가 일본에서 내는 일본어로 쓴 책에다가 미국 잡지는 대단한데 일본 잡지는 안 좋다고 하는 것이, 비록 그것이 비판이라고는 할지라도, 어쨌든 파급력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존경스러워했던 것 중에는 이런 태도도 있다. 하루키는 일본을 무작정 옹호하고 들지는 않는다. 일본인이면서도 아닌 건 아니고 맞는 건 맞다는 태도인데 그 어려운 것을 구별해내고, 다수 앞에서 당당히 이야기하는 게 멋있다.

아무튼 하루키는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