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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책

자식은 부모와 만난다, 나는 엄마와 만난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내가 꼽는 올해의 도서 베스트 5에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좋은 책이었다. 사고의 변화를 가져오고 범위를 더욱 넓혀준 책이다. 그동안 내가 행해온 형식적인 친절이나 겉모습만 수용이었던 행위를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픈 책이다.

이 책에서 좋은 부분을 골라보라고 한다면 셀 수 없이 많이 고를 수 있다. 그렇지만 딱 한 가지만 고르라고 한다면 고심을 하다가 서문을 선택할 것이다. 서문은 정말 좋은 글이다. 내용이 정말 좋다. 이전에 썼던 글에서 소개한 부분 말고 또 다른 부분을 소개해볼까 한다. 다음과 같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에서 자식은 부모의 기획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라 긴 시간 수많은 관계와 사건을 통과하며 부모와 만나는 독립된 존재다. (중략)

출산과 동시에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점차 한 사람의 개인으로 성장하고, 확장되고, 여러 가지 경험을 축적하고 체화하면서 하나의 인격체로서 부모를 만나는 것이다. 부모 또한 자녀와의 관계 속에서 변화한다. 성숙일 수도 퇴보일 수도 있지만, 부모 역시 서서히 자녀와 '만나가는' 것임은 틀림없다.

감동적인 문장이다. 이 문장이 의미 있게 와닿았던 까닭은 최근 내가 늦은 사춘기를 겪으면서 '엄마'와 '아빠'에 대해, 그리고 '부모'에 대해, 그 관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내 안에서 지배적이었던 생각은 부모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약할 때부터 지금까지 키워온 사람이니 이 은혜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거였다. 때문에 부모님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마다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대상은 부모 밖에는 없다. 친구나 그 외의 다른 관계에서 뭔가를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은 느끼지 않는다. 꼭 잘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우연이 이 책을 펴고 서문을 읽으면서 죄책감으로 들어차있던 마음이 어느 정도는 트일 수 있었다.

이 구절 뒤에 저자는 몇 마디를 덧붙인다. 다음과 같다.

한국 사회의 현실을 생각해볼 때 나의 어머니에게 1980년대 초반 나의 출생은 분명 '손해'였을 것이다. 그러나 2016년 내 어머니와 나의 만남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나는 항상 부모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인 손실을 일으키고, 투자 대비 이윤은 턱없이 적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관계를 두고 나는 매번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고생을 옆에서 봤고, 그 고생을 통해 나는 지식을 얻어 가고 새로운 문화를 향유했으며, 여기저기 여행을 다녔고 편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엄마의 허리 통증 앞에서 죄의식을 느끼고, 무릎 통증 앞에 죄송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내가 받은 투자는 컸고 그것에 대비해서 내가 낸 이윤은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서문을 읽으며 조금이나마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잡을 수 있었다.

나는 엄마와 만난다. 2018년에도 만났고, 2019년에는 만나고 있고, 2020년에도 어김없이 만날 것이다. 엄마가 만든 결과물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요소들을 자양분 삼아 자란 존재로 나는 엄마와 만난다. 이제는 그 만남에 집중을 해야겠다.

남은 만남은 적어도 잘못된 것이 아니게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