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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책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일 <어떻게 살 것인가>

적당한 거리감은 건강한 관계에 필수적이다. 너무 멀어서도 안되고 뜸해서도 안되며, 너무 가까워서도 안되고 너무 자주여도 안된다. 내가 지금까지 맺은 수많은 관계를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러나 적당한 거리감이 중요한 만큼, 이것을 유지하는 것은 무지막지하게 어렵다. 나는 특히 좋아하는 사람과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어렵다.

오늘 같이 재밌게 놀았으면 내일도 같이 있고 싶고, 오늘 죽이 잘 맞았으면 내일 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하지만 한두 번은 괜찮지 매일 이렇게 자주 시간을 같이하다보면 어김없이 권태의 시간은 온다.

'이 사람이랑 있을 때 너무 재밌어. 이 사람이랑은 권태같은 게 없을 거야. 이 사람이랑 몇십 년이고 같이 지내야지.'

그렇게 생각을 하지만 불과 몇 개월만 지나도 그때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된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기대는 크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실망이 크면 상심도 큰 법인데 그러다 보면 흔히 '인간관계에 데인다'고 표현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거리가 먼 게 좋다는 건 아니다. 편하게 연락해서 옛날이야기를 하는 관계가 줄어드는 것만큼 속상한 일도 없을 것이다. 멀어진 관계가 가져오는 상심을 나는 아직까지는 뼈저리게 느끼지 못했지만, 그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은 비단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거리감'이다. 세상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좋은 세상을 원하지만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을 저주하지는 않는다.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경우에도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내가 하는 일들은 의미가 있다고 믿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임을 인정한다. 삶이 사랑과 환희와 성취감으로 채워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좌절과 슬픔, 상실과 이별 역시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인다.

타인뿐 아니라 세상, 내가 하는 일,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거리감을 유지할 때 우리는 덜 실망할 수 있고 보다 이성적인 자세로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 거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징징대거나 투정 부리거나 생떼를 쓰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거리감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정말 너무 어렵다. 어떻게 하면 그 모든 것에 대해 초연한 태도를 가질 수 있을까.

더 많이 데여봐야만 가질 수 있는 태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