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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면 <아몬드> <숨쉬듯 가볍게>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아픔이 있는 편이 그래도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정말 위험한 건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우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소설 에 나오는 이 구절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그럴까? 아픔이 있는 편이 그래도 더 좋은 걸까? 나는 감정에 엄청나게 휘둘리는 사람이다. 스스로가 평가하기에 감정 기복이 심하고 자그마한 일에도 쉽게 기쁘고 화가 나고 슬프고 서운하다. 그렇다고 감정을 표출하는 성격은 아니고 오히려 담아두는 편에 가깝다. 그래서 휘몰아치는 감정의 파도를 밖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내 안에서 다 감당하려고 하다 보니 몹시 힘들다. 그런 힘듦에 짓눌리다 보면 이 ‘감정’이라는 놈이 미워진다. ‘왜 나는 이렇게 감정적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무지가 무례로 이어지지 않도록 <출판하는 마음> 작가 은유의 '출판인 인터뷰집' 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책만 그런 게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세포 격인 상품을 우린 거의 모르고 사용한다. 농사짓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쌀을 얻어 밥을 먹고, 옷 만드는 사람의 처지와 얼굴을 모르고 옷을 사서 입는다. 결과물만 쏙쏙 취하니까 슬쩍 버리기도 쉽다. 그렇게 편리를 누릴수록 능력은 잃어간다. 물건을 귀히 여기는 능력, 타인의 노동을 존중하는 능력, 관계 속에서 자신을 보는 능력. “분업은 사회의 생산물들, 사회의 힘, 사회의 향유를 증가시키나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사람들 각각의 능력을 빼앗고 감퇴시킨다.”라고 일찍이 프랑스 경제학자 세이가 분석했듯이, 거대한 시스템에 하나의 부속으로 끼워져 파편화된 노동을 수행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은 자기 ‘..
헤어짐이 싫다고 피할 수는 없기에 <미움받을 용기2> 헤어지는 순간은 나를 괴롭게 한다. 한동안 눈물을 쏟게 만든다. 헤어짐의 대상이 누구든 대부분의 헤어짐에서 그렇다. 정말 싫어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만남이 매듭지어지는 그 끝은 항상 슬프다. 그 후유증으로 며칠을 힘겨워하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헤어진다는 것이 슬픈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후회가 커서 더 큰 슬픔이 밀려온다. ‘우리의 만남 끝에는 언제나 이별이 따른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을 항상 이별을 목전에 두고 깨닫는다. 그래서 그토록 당연한 사실이 생각의 심해 속에 가라앉아 있을 때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 감정이 우선이 되고 일단 ‘나’부터 생각한다. 마음은 좁아져있고 때문에 사소한 부분에서 신경질을 내고 티끌 같은 단점을 이유로 타인을 마음껏 싫어하기도 한다. 심해 속에 가라앉아 있던 이별의 사..
당신의 막힘은 곧 쌓임이 된다 <숨쉬듯 가볍게> 팟캐스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지대넓얕)’의 진행자 중 한 명인 김도인의 저서 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크게 막히는 상황은 큰 장애를 넘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더 철저하게 쌓아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더 크게 쓰일 기회를 대비하기 위한 준비기간이기도 해요. 그래서 막힌다는 뜻의 ‘축’이라는 글자는 동시에 쌓인다는 것을 뜻하기도 해요. 시냇물이 평지를 흐르다 댐에 이르면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막히는 것과 같아요. 시냇물의 입장에서 보면 하던 일이 실패한 것과 같을 뿐 아니라 댐의 수위가 차오를 때까지는 계속해서 더 이상 나아갈 수도 없죠. 그래서 크게 막힌 상황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댐 위에서 보면 물이 막힌 게 아니라 점차 차오르고 있는 거예요. 시냇물일 때는 평..
이젠 듣지 못하는 노래가 있어 노래에는 추억이 담겨 있다. 어떤 노래에는 설렘 가득한 짝사랑의 기억이, 어떤 노래에는 힘든 마음을 추스르고 괜찮은 척해야 했던 안쓰러운 시절이 담겨있다. 슬픈 분위기의 노래라고 슬픈 추억만, 신나는 노래라고 좋은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런 추억이 담겨 있는 노래는 우연히 그 멜로디를 들었을 때 과거의 어느 시점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의 풍경과 상황, 감정, 옆에 있던 사람을 한순간에 기억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주 듣지 못하는 노래가 있다. 노래가 내 취향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차마 재생하기 힘들거나 재생 버튼을 누르고 싶지 않은 노래가 있다. 노래를 듣지 못하게 만드는 두 가지 종류의 추억이 담겨있어서이다. 첫 번째, 마음..
부모님의 에세이를 볼 수 있다면 요 근래 유시민 작가의 책을 많이 읽고 있다. , , 를 읽었고 를 읽고 있다. 그중 서문에 이런 부분이 있다. 그래도 이 책은 아내 K의 허락을 받아 이제 갓 대학에 들어가 제 나름의 인생행로를 설계하고 있는 딸 S에게 주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우리가 그 나이였을 때 있었다면 좋았을 책이라는 데 공감했다. 이 책을 주면서 사랑하는 딸에게 말하고 싶다. 세상은 죽을 때까지도 전체를 다 볼 수 없을 만큼 크고 넓으며, 삶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축복이라는 것을. 인간은 이 세상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살러 온 존재이며, 인생에는 가치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느 길에서라도 스스로 인간다움을 잘 가꾸기만 하면 기쁨과 보람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순이삼촌>을 읽고 (제주 4·3사건 70주년) 이번 4월 3일은 제주 4·3사건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인터넷 서점에 들어갔다가 4·3사건 70주년을 맞이해 관련 도서들을 모아놓고 이벤트 하는 것을 보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4·3사건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 한국사 강의에서 잠시 언급되어 5·10 총선거 전에 생겼던 여러 사건 중 하나인 비극적인 사건으로만 알뿐이었다. 얕은 지식이 부끄럽기도 하고 더 알아보고자 하여 현기영 작가의 (1978)을 읽게 되었다. 단순히 얕은 지식을 채우기 위함이라면 문학작품보다 백과사전이나 4·3사건에 관한 사실들을 기록해놓은 책을 보는 것이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작품인 을 읽은 까닭은 문학이 가지고 있는 강점 때문이다. 그 강점의 정체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자..
안녕하세요, 악필가입니다. 나는 어마어마한 악필가다. 사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명필에 가까운 글씨를 썼었다. 초등학교 때는 글씨를 예쁘게 잘 쓴다고 선생님께 칭찬도 받았었다. 그 선생님께서 지금 내 글씨를 보신다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그렇다면 내 글씨는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악필로 칭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 된 걸까.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그중 가장 그럴싸한 것은 많은 공부량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수업시간이 늘어나고 복습 거리도 많아지고, 또 개인 공부할 것도 많고 이래저래 자습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당시 나는 뭐든 써가면서 이해하고 외우는 공부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눈은 머리보다 빠르고 머리는 손보다 빨랐으며 시간은 촉박했다. 눈과 머리가 느림보 손의 속도를 맞춰주면 시간이 많이 걸려서 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