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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노래

이젠 듣지 못하는 노래가 있어

노래에는 추억이 담겨 있다. 어떤 노래에는 설렘 가득한 짝사랑의 기억이, 어떤 노래에는 힘든 마음을 추스르고 괜찮은 척해야 했던 안쓰러운 시절이 담겨있다. 슬픈 분위기의 노래라고 슬픈 추억만, 신나는 노래라고 좋은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런 추억이 담겨 있는 노래는 우연히 그 멜로디를 들었을 때 과거의 어느 시점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의 풍경과 상황, 감정, 옆에 있던 사람을 한순간에 기억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주 듣지 못하는 노래가 있다. 노래가 내 취향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차마 재생하기 힘들거나 재생 버튼을 누르고 싶지 않은 노래가 있다. 노래를 듣지 못하게 만드는 두 가지 종류의 추억이 담겨있어서이다. 

첫 번째, 마음 아픈 추억일 경우. 
재생 버튼을 누르고 노래가 흘러나오면 그때의 힘들었던 순간이, 그 감정이 함께 재생된다. 별로 유쾌한 추억이 아니기 때문에 되도록 꺼내보고 싶지 않다. 

두 번째, 무척 소중한 추억일 경우.
그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기분 좋은 느낌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계속 그 기분 좋음이 유지되도록 꼭꼭 봉인해두고 싶다. 혹시 그 기분 좋음이 휘발될까 봐, 혹은 이 노래가 그때가 아닌 지금을 새로 기록해버려서 그때의 기억을 덮어버릴까 봐 그게 싫어서 그런다.

짝사랑했던 친구가 추천해줘서 같이 들었던 가수 로이킴의 노래를 지금은 잘 듣지 못한다. 그때의 설렘이, 표현 못 할 울렁이는 느낌이 휘발되어버릴까 봐 그렇기도 하고, 결국 이뤄지지 못했던 짝사랑이므로 약간의 안타까움이 묻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의 테마송인 <So Nice>라는 신나는 노래(내가 좋아하는 건 2016 ver.)도 잘 듣지 못하겠다. 나를 힘들게 해서 귀가하는 길목에서 울음이 터지게 만들었던 사람 앞에서 괜찮은 척하기 위해, 또 저 밑바닥까지 다운된 기분을 끌어올리기 위해 들었던 노래였기 때문에. 밤새 울어놓고 다음날 아침에 이 노래를 들으며 ‘나는 괜찮다, 나는 즐겁고 신난다.’라고 주문을 걸었던 안쓰러운 내 모습이 떠올라서 그렇다. 

노래는 나를 기억하는 도구이다. 나의 감정을, 처한 상황을, 보고 있는 풍경을, 그리고 옆에 앉은 사람을 기록한다. 그래서 새로운 노래를 더 많이 듣는다. 백지 위에 지금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나중에 생생하게 기억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