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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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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좋을 때 헤어집시다 그럴 때가 있다. 사람을 만나서 너무 즐거울 때, 그래서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화요일에 만난 사람들이 딱 그랬다. 이야기가 끊기질 않고 웃음 역시 끊기질 않는다. 다들 호의에 가득 찬, 서로를 향한 애정 어린 눈빛을 가지고 있으면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큰, 그런 만남이었다. 그런 만남이 모두에게 흔치 않을 테지만 나에게는 더더욱 흔치 않은 일이다. 나는 아웃사이더 기질이 강해서 뭐든 혼자 하는 걸 선호한다. '남과 함께 해서 불편함을 느끼고 어정쩡한 즐거움을 느낄 바에 나는 혼자 있으면서 편안함과 더 큰 즐거움을 느끼겠다!'는 주의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나에게는 여러 사람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시도이며, '오늘 밤새도록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엄청난 기적이다...
이유없는 짜증, '시발 시간' (이 글은 지난주 금요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별다른 큰 이유 없이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미는 때가 있다. 지금이 그때다. 그런데 이걸 '이때'니 '저때'니 하면서 계속 부를 수는 없으니 이참에 멋들어진 이름 하나 지어줘야겠다. 음... 뭐가 좋을까. 일단 지금 기분으로서는 '시발 시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이유 없는 짜증으로 인해 입에서 연신 '시발 시발'이 나오니까. 여하튼 그 시발 시간을 경험하고 있으려면 정말이지 힘들다. 그나마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괜찮은데, 주변에 누구라도 있으면 정말 더 힘들다. 그 주변에 누구가 정말 어려운 상대라면 '시발 시간'은 내 안에서만 꿈틀댈 뿐 밖으로는 표출되지 못한다. 그러나 주변에 편한 사람이 있다면 '시발 시간'은 내 안팎으로 나를 아주 혹사시킨다. 그..
소중한 사람을 보지 못하는 눈, 가장 맛있는 귤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 나는 몰랐다. 어떤 사람을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지, 누구를 가장 신경 써야 하는지를 몰랐다. 10명의 사람에게 귤을 줄 것이다. 가장 맛있는 귤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 누구라도 정답은 알 것이다. 소중한 사람. 나에게 중요한 사람. 나와 끝까지 갈 사람이 답이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가족이 될 것이다. 친구일 수도 있고, 연인이 될 수도 있고.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실천하지 못했다. 내게 가장 중요한, 나와 함께할 사람이 아닌 한번 보고 말 사람들에게 더 잘 보이려고 했다. 더 맛있는 귤을 더 공손하게 건네고 있었다. 오늘에야 그걸 깨달았다. 그리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나의 생각과 나의 태도는 얼마나 쓰레기였는가를 생각했다. 왜 나는 이렇게 중요한 사람들을, 언제라도 연락하면 달려와줄 사람들..
안녕히 이리도 아름다운 저녁 하늘을 보여주려고 당신은 이때 떠난건가요.
늦은 사춘기가 왔나 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청소년이 아닌데, 10대에서 벗어난지도 오래 전인데 느닷없이 사춘기가 찾아왔나 봅니다. 정작 청소년일 때는 깜깜무소식이다가 별안간 이렇게 20대가 되고 나서야 늦게 찾아왔나 봅니다. 그래서 요즘은 괴롭습니다. 엄마에게 부쩍 짜증을 많이 냅니다. 별것도 아닌 엄마의 말에 토라지고 화가 나고 그래서 또 짜증을 냅니다. ‘엄마가 맨날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이 모양이지’라는 최악의 자식이나 할 법한 생각도 합니다. 내가 이 모양인 건 내 탓일 텐데 말이죠. 청소년이었다면 ‘그래, 내게도 사춘기가 왔나 보구나’할 테지요. 물론 어느 나이대이든 부모에게 짜증을 내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괴로워지는 건 매한가지지만요. 그래도 부모님 입장에서는 ‘쟤가 중2라서 중2병에 걸렸구나’, ‘고등학생이라..
(친척의 전혀 감미롭지 않은) 잔소리 감상 후기 얼마 전 조카의 돌잔치에 참석했다. 나는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는데 벌써 조카가 생겨버렸다. 아무튼 조카의 돌잔치에 가서 친가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나.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괴로운 취조가 시작되었다.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어디에 취업할 것이냐, 너는 박사를 딸 생각은 없냐, 장학금은 받냐, 내가 아는 누구는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아서 집에서 돈을 가져다 쓴 일이 없다더라라는 취조들. 주눅 들게 만들 정도로 몰아치는 질문과 그 사이를 빼놓지 않고 촘촘히 채우는 비교들에도 무너지지 않고 간신히 정신을 잡고 있었다. 만일 그 공간이 넓었다면 어디로 달아나버렸을 텐데 좁아터진 차 안이라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괴로워도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질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취조는 나와 나의 오빠..
구직활동을 마치며 가고 싶었던 회사에 합격했다. 기쁘기 그지없다. 엄마도 기뻐하고 이모도 기뻐한다. 다른 회사도 여러 군데 지원했기 때문에 그곳의 면접이 더 남아있지만 이미 그곳들에 면접 불참 의사를 전했다. 기쁜 마음을 가지고 최대한 예의를 차리며 전화를 했다. 6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취업 준비. 여러 곳에 입사지원서를 쓰고 자기소개서 고치기를 무한 반복했다. 필기시험을 보러 갈 때는 시간에 맞춰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서 첫차를 타고 갔던 적도 있다. 적성검사를 볼 때는 좋지 않은 내 수학 능력이 야속하기도 했고, 의외로 좋은 도형 감각에 감탄하기도 했다. 면접을 보러 갈 때는 머리를 만지는데 1시간 이상을 소요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만든 머리가 헝클어질까 봐 버스에서는 의자에 머리도 대지 못했다. 면접을 기다..
인정하면 쉽습니다요. 뭐든 인정하면 쉬운 법이다. 특히 나의 못된 점, 단점을 인정하면 그걸로 마음고생하는 일은 훨씬 줄어든다. 내가 못되어먹은 인간이라는 것. 놀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욕심이 많다는 것. 마음이 개미 눈곱만큼 협소하다는 것. 등등 일단 인정하면 어떤 나를 만나든 다 괜찮다. 남에게 짜증을 내는 나, 사려 깊지 못한 나, 질투하는 나, 쪼잔하게 구는 나 등등 각종 형편없는 나 시리즈를 만나도 아임 오케이가 된다. 그러니까 그냥 인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