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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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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 잘 살고 있을게. 만나면 기분 좋아지는 사람들과 만날 날짜를 정하고 나면 종종 하는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보통 ‘그래, 잘 있어’와 같은 류의 대답을 하곤 한다. 그들은 내가 한 말에 담긴 복잡한 감정을 모를 것이다. 되려 몰랐으면 좋겠다. 도저히 그들에게는 풀어 설명할 수 없는 저 말뜻을 여기서 혼자 설명해보려한다. 누가 보기를 바란다기보다 그냥 내가 지금을 기록하고 싶어서 그렇다. 20대의, 한없이 여리고 흔들리는 이 시기를, 한번 할퀴면 며칠을 앓아눕는 지금을 기록하고 싶어서. 조금 더 강해졌을 때 과거를 기억해볼 수 있도록 말이다. 도무지 살아내기가 힘든 미래에 이때를 떠올리며 '그래도 나는 조금 더 강해졌구나' 느끼기를 바라면서. 그런 거다. 나는 지금 솔직히 삶이 어렵다. 더 정확히 표현해주는 단어는..
복사하기 대신 붙여넣기 붙여넣기와 복사하기 버튼을 헷갈릴 때가 있다. 그 헷갈림의 결과는 때로는 별일 아니지만 때로는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후회하게 만든다. 결과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순서의 차이다. 첫번째, 붙여넣기를 누르려고 했는데 복사하기를 누른 경우. 별로 큰 일이 아니다. 내가 원래 붙여넣으려고 했던 글을 다시 복사해와서 붙여넣으면 될일. 손실은 없다. 두번째, 복사하기를 누르려고 했는데 붙여넣기를 누른 경우. 이건 큰 일이다. 전체를 쭉 드래그해놓고 붙여넣기를 해버리면 내가 복사하려고 했던 내용은 사라지고 만다. 한글문서에서 그런일이 벌어지면 그나마 다행이다. 바로 전으로 돌아가는 버튼을 누르면 되니까. 그러나 아이폰 메모앱같은 곳에서 그런일이 벌어지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머리카락을 꽉 움켜잡고 나는 나에게 말한..
글의 성별 글에는 성별이 묻어날까? 한편의 글을 읽고 글쓴이의 성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내가 여기 써놓은 글을 읽은 사람들은 나를 여자라고 생각할까, 남자라고 생각할까? 책을 읽을 때는 글쓴이의 성별을 알기가 쉽다. 글 때문이 아니라 책의 구조 때문이다. 제목을 보면서 저자의 이름을 본다. 이름으로 성별을 유추해본다. 이게 1단계. 2단계로는 책날개에 쓰인 저자에 관한 글을 읽는다. 그러면 보통 남자인지 여자인지 감이 잡힌다. 어떤 경우는 저자의 사진이 아예 실려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글을 읽지 않아도 한눈에 저자의 성별을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보통 글을 읽기도 전에 성별을 알고 읽는다. 그런데 블로그에 있는 글 한편을 읽을 때는 좀 다르다. 성별을 알기가 좀 어렵다. 성별을 알기 위해..
불완전 양손잡이 “어! 너 왼손잡이야?”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을 때 종종 듣는 질문이다. 나는 여기에 단답으로 대답할 수 없다. 응도 아니고 아니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아, 그럼 오른손잡이야?”라고 물으면 거기에도 단답으로 대답할 수 없다. “아하! 그러면 양손잡이구나?” 역시 이 질문에도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없다. 구구절절 설명해야 한다. “그게 말이야 밥이랑 가위는 왼손으로 쓰는데 글씨쓰고 다른 거 할때는 오른손이야.”라고. 가장 짧게 말해도 이정도는 말해야 한다. 그러면 상대는 “아, 그럼 양손잡이아니야?”라고 하는데 그때 나는 “음, 그런가?”라고 하며 말끝을 흐린다. 굳이 흐리는 이유는 내 좌우 정체성이 불분명하기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양손잡이란 젓가락질을 왼손, 오른손 어느 손으로든 자유로이 할 수..
무모한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생일을 맞아 무모한 소원을 빌었으나 너를 만나는 일은 없었다.
누구와 오래도록 함께할 건지를 생각해야 한다. 누구와 오래 갈 것인가? 누구와 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마주보고, 웃음을 나누고, 꿈을 이야기할 것인가? 너 스스로와 네 앞에 있는 친구와 이름도 나이도 알지 못하는 사람 중 누구인가? 가장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당연함이 때로 소중함을 퇴색시키고 망각시키지만 소중한 건 소중한거다. 그러니 금방 만나 금방 헤어질 사람은 신경쓰지 말고 너, 너에게 소중한 사람을 신경써라. 부디.
제일 싫어하는 꿈 제일 싫어하는 꿈을 꿨다. 나는 종종 시험에 늦고, 학교에 늦고 뭐 아무튼 늦는 꿈을 꾼다. 현실에서의 나도 수업에 좀 늦을라치면 가슴이 쿵쾅거리는 타입인데 꿈에서도 나는 나인가보다. 늦으려고 하면 너무 조급해지고 쭈그러든다. 오늘도 그런 꿈을 꿨다. 시험 시작하기 5분 전인가(꿈은 생생하다가도 깨고 나면 옅어진다) 아무튼 그 시간에 집에서 머리를 감았다. 현실에서는 5분 남겨두고 머리를 감는 짓은 하지 않은데 꿈이라 더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그랬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꿈이 현실인 줄 알았다. 히히. 어찌어찌해서 도착을 하고 시험을 보는데 그때도 실수만발이었다. 내용도 잘 모르겠고 컴싸는 또 안 보이고 시험 보는데 책이 내 책상 위에 있고 그래서 식겁했다. 내 손목엔 시계가 없고 이 시험은 언제..
버스를 놓쳤다면 글을 쓰세요! 차를 타야 하는데 늦었다. 버스는 이미 지나가버린 후였고 나는 1시간 뒤에 오는 차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차를 놓친 것을 깨달은 뒤 몰려온 것은 후회. 왜 더 부지런히 준비하지 않았던가, 카드지갑은 왜 가방 속에 넣어두지 않아 가기 직전에 찾도록 만들었는가 하는 후회. 그리고 평소에는 예정시간보다 10분은 더 늦게와서 매일 기다리게 하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빨리 온 것인지 버스에 대한 원망. 짙은 후회와 원망이 몰려오는 까닭은 나의 아까운 한시간을 허비하게 됐다는 것 때문이다. 티비를 보며 세시간을 보내고, 오늘만해도 낮잠에 취해서 두시간을 보냈던 나는 그 무엇보다도 지금 이 기다림의 한 시간이 아까운 것이다. 목표한 걸 하지 못했다는 건 매한가지다. 티비를 보는 동안 내가 목표한 어떤 걸 이뤄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