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소한 이야기

안하무인 집주인을 둔 어느 세입자의 변

얼마 전에 이사를 왔다. 직장때문에 전에 살던 원룸에서 이곳 원룸으로 이사왔다. 아직 채 한달도 되지 않았다. 계약할 때 보지 못하고 입주할 때서야 처음 마주친 집주인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막무가내, 안하무인, 이런 단어가 떠오르는 사람. 자신의 처지가 가장 우선인, 그래서 상도덕을 무시하는 사람.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 아무리 자기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해도 남을 무시하면서 그러는 건 잘못된 건데 그것도 모르고서 안하무인이다.

오늘은 전에 살던 세입자의 미납된 도시가스 건으로 통화를 했다. 분명 고지서가 나오면 연락을 달라고 했고, 부동산 중개인은 이사 전날까지 사용한 요금이 찍힌 도시가스 고지서를 나에게 가져다 줬다. 나는 그걸 사진으로 찍어 문자로 전송해줬다. 그럼에도 오늘 나온 고지서에는 전에 미납된 금액이 찍혀있었다.
충격에 사로잡혀 전화를 걸었더니 온갖 핑계를 댄다. 전혀 미안함이라곤 없다. 당당하다. 자기 처지를 내세우기 바쁘다. 다리수술을 해서 은행에 갈 수 없고 먹고 있는 약 때문에 손가락 움직이기도 힘들어 문자를 못봤다고. 그럼 이사올 때 멀쩡히 걸어다니던 건 뭐였을까.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아무튼 그러면서 이번달 월세에서 가스비만 떼고 내란다.

나는 이런 집주인이, 자기가 내뱉은 말도 제대로 기억 못하고 미안해 할 줄도 모르며 자기 처지 내세우기 바쁜 인간이 하는 소리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나중에 혹시나 월세 덜 냈다고 트집잡을까봐 문자든 서면이든 증거를 남겨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가 아프다고, 누구 결혼식엘 가야하는데 지팡이 짚고 가게 생겼다고 다시 자기 처지 내세우기 바쁘다. 그래서 바로 윗층에 사는 집주인에게 내가 찾아가겠노라 말하니 자기가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 아니란다. 뭔 개소리야. 그러면서 자기가 떼먹지 않을 거라고 자기 아들이 어쩌고 딸이 어쩌고 하면서 또 이상한 소릴한다.

계속되는 언쟁속에서 나는 항복했다. 그래요, 일단 집주인이 하라는 대로 이달 월세에서 공제하고 내겠다고 했다. 결국 내가 제시한 합의점을 계속 거부하면서 자기 멋대로 하는 데 성공한 꼴이다. 그렇게 한다고 말하니 자기를 믿으라면서 자기 자식들이 가정교육 잘 받았고 학벌도 좋고 어쩌고 저쩌고 쓸데없는 소릴 한다. 그런 부모 밑에서 가정교육을 과연 잘 받았을까 싶고 학력이 좋다고 한들, 저기 미국에 있는 하버드대를 나왔다고 한들 그게 대체 인성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런 궤변을 늘어놓는 집주인을 보며, 가정교육을 잘했는지 어쨌는진 몰라도, 또 자식들이 얼마나 잘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사람으로부터 ‘저런 인간이 되진 말아야지, 저렇게 늙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 생각되진 않는다.

1년만 지나면 이사를 갈거다. 쓰레기같은 집보다 더 기피대상은 이런 집주인이다.

덕분에 기분은 또 울적해져서는.
덕분에 전 집주인이 얼마나 덕이 좋은 사람이었는지, 인상이란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가, 멋있는 사람인가, 어른다운 어른인가 하는 것들을 상기시켜준다. 오늘 만난 버스기사님은 얼마나 멋진 어른인가 하는 것도.

물론 집주인의 덕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내덕이며, 멋진 인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덕이다.

다음에 또 이런 변을 쓸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부디.

'사소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대금물  (0) 2019.05.02
5월이 오면  (0) 2019.04.30
흘러넘치도록  (0) 2019.04.09
답답하다  (0) 2019.03.21
산타면 좋아  (0) 2019.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