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소한 이야기

모든 초라함은 나로부터

초라함.

내가 가장 싫어하는 느낌이다.

무언가가 초라하다고 느껴지면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초라함을 느낀다.

나 혼자 있을 때 가끔, 가족 또는 친구와 같이 있을 때는 꽤.

내가 느끼는 '초라함'이라는 것은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된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이 나를,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 사람의 말을 어떻게 평가할까를 상상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니까 일면식도 없는 타인은 별다른 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나 혼자 상상으로 키워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초라함'이라는 건 나 혼자 만들어내는 것에 불과하다.


얼마 전 집을 얻으러 부동산에 엄마와 함께 갔다.

집을 둘러보고 괜찮은 집을 발견해서 계약을 하기 위해 잠시 부동산 의자에 앉아있었다.

엄마는 부동산 내부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했다.

"직원은 이렇게 많은데 공인중개사는 한 명뿐인가?"와 같은 말들을 했다.

나는 일순간 그 말을 듣고 초라하다고 느꼈다.

그 '초라함'에는 직원들이 이 얘기를 듣고 뭐라고 생각할지, 우리를 초라하게 보지 않을지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 같은 게 섞여있었을 것이다.

직원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저 내 상상이 만들어낸 '초라함'이다.

별말도 아닌 걸로 '우리가 초라하다'고 느낀 나는 지겨운 어투로 "아, 몰라"라고 답하며 엄마에게서 완전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 생각해보면 그따위 것은 초라하다고 느껴질 만한 것도 아니라는 걸 매번 깨닫게 된다.


이런 일을 수없이 겪다 보니 마침내 결론을 세울 수 있게 됐다.

'나는 나를 초라하게 보는구나, 다른 사람이 나를 초라하게 보는 게 아니라.'

이런 슬픈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내가 보는 나'와 밀접히 관련될 수밖에 없다.

내가 나를 초라하게 본다면 남들도 나를 초라하게 본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내가 가진 형편없는 시선에서 나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사소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답답하다  (0) 2019.03.21
산타면 좋아  (0) 2019.03.14
엄마와도 권태기가 올 수 있을까  (0) 2019.02.21
감기에 걸려보니 알겠다.  (0) 2018.12.11
오늘 한 사람을 살렸다.  (0) 2018.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