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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이야기

어른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아무런 근거도 없이 믿어 왔던, 맹신의 수준으로 믿었던 어른들이 있다. 바로 부모님(정확히는 엄마)과 선생님이다. 그들은 도덕적이고 지혜로우며 정의롭고 올바르게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의 근거는 ‘선생님이고 나의 부모님이기 때문에’였다. 결국 이 생각은 20대 초반에 와장창 부서지게 된다. 

20살 때까지도 엄마가 틀릴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지식의 측면에서는 모르는 게 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사고방식이나 태도, 판단은 항상 ‘옳음’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 기준에서는 아직도 그런 면이 많다. 역시나 엄마는 현명하고 지혜롭다. 그런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가끔 엄마도 편견에 가득 찬 말들을 하고, (물론 내 기준에서이지만) 구시대적인 발언을 하기도 한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서 또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언행이 항상 바른 사람은 없다는 것. 수많은 행동과 말들이 어떻게 항상 바를 수 있을까. 물론 ‘바르다’는 것도 주관적인 것이지만 말이다. ‘저 사람은 지혜로워’, 또는 ‘저 사람은 올바르게 살아’ 등의 말에는 ‘대체적으로’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음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즉, ‘완벽’은 없고 ‘항상’이라는 것도 없다. 

엄마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고 해서 엄마를 덜 사랑한다거나 엄마를 덜 존경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 우리 엄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고 나보다 훨씬 현명한 사람이므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선생님에 대한 환상을 이야기해보겠다. 사실 나에게 엄마는 딱 한 사람이지만 선생님은 수없이 많았다. 그런데 그 수많은 선생님들이 다 괜찮은 사람, 아니 그걸 넘어서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니까. 그래서 선생님이 하는 건 좋은 것, 옳은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해도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벌어진 에피소드가 있다.

때는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 당시 담임선생님은 50-60대의 남자 선생님이었다. 무슨 시간이었는지, 어떤 의도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분은 갑자기 칠판에 여자의 나체 그림을 그리셨다. 그걸 본 나는 신세계를 보았다! ‘아, 사람을 저렇게 그릴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좋게 포장하면 새로운 예술 세계를 맛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새로운 예술 세계를 맛본 뒤 엄마와 외갓집에 가게 되었다. 당시 외할아버지께서 철 지난 달력을 조그맣게 잘라 네모난 메모지를 만들어 책상 한편에 쌓아놓곤 하셨다. 나는 그 메모지에 자주 글이나 그림을 끼적이곤 했는데 그때도 그랬다. 그런데 그때는 좀 달랐다. 새로운 예술 세계를 맛본 이후였으므로 그것을 내 손으로 다시 재연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나도 그 종이 위에 여자의 나체를 그렸다(정확히 묘사하면 가슴을 그리고 유두를 표현하는 것, 그리고 배꼽을 X자로 그리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엄마는 나의 새로운 화풍을 담은 작품을 보았고 몹시 당황해했다. 그때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왜 옷이 없어? 옷을 입혀 줘야지.”라고 나긋하게 이야기하며 엄마는 급하게 검은색 옷을 입혀줬다. 내가 그린 사람의 몸 위에 검은색 모나미 볼펜으로 덧칠해 옷을 그린 것이다. 그때는 ‘아, 옷을 안 입으면 추우니까 입혀줘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엄마와 함께 옷을 입히는 일에 동참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뒤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니 그런 의미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물론 나체의 여자를 그리는 건 나쁜 게 아니다. 실제로 많은 예술 작품들 속에 나체의 여자가 등장하지 않나.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그걸 굳이 무비판적일 수밖에 없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보여줄 필요가 있나 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 일을 생각하면 웃음이 삐져나온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선생님을 만났고 (내 기준에서) 별로인 선생님도 좋은 선생님도 있었다. 그리고 교복 입는 시기를 지나고 대학교에 와서도 많은 교수(님)들을 만났다. 나의 환상이 깨지게 된 건 교육학 수업을 들으면서였다. 교육학을 공부하며 ‘교육’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면서부터 교육자를 비판적인 눈으로 보게 되었다. 또 임용고시가 인성적인 요소를 평가하는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이런 후회를 하곤 한다. ‘더 어렸을 때 선생님은 틀릴 수 있다는 걸, 항상 맞는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라는 후회. 하지만 지금에라도 깨달은 게 어딘가. 과거에도 수많은 선생님을 만났지만 미래에도 역시 수많은 선생님(꼭 교사가 아니더라도)을 만날 것이다. 그 사람들을 비판적인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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