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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책

체력이 우선이다 <미생><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근력도 엉망, 지구력도 엉망, 온갖 체력이 엉망. 저질 체력의 소유자, 그게 바로 나다. 나는 몸을 자주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직업으로 치면 운동선수나 소방관 같은...) 그래서인지 학생 시절부터 최근까지 줄곧 ‘체력’이라는 것을 등한시했었다. ‘굳이 힘들여 체력을 키울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운동이란 ‘하면 좋지만, 나의 경우는 안 해도 크게 상관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운동을 하는 날보다 하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체력이 없는 사람(나)은 이런 모습이다. 2-3시간 집중하고 나면 완전히 방전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졸리지는 않다. 그저 힘이 없을 뿐이다. 그래서 자거나 먹거나 휴식을 취해줘야 한다. 일종의 충전시간을 가져야 하는 셈이다. 또 외출하고 오면, 혹은 수업을 듣거나 일을 하고 돌아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역시 방전. 방전이 되는 것이다!

굉장히 비효율적인, 수명이 짧은 건전지를 끼고 생활하는 셈이다. 

이런 삶을 살면서 비교적 최근에 그제야 체력의 중요성을 느꼈다. 정확히 말하면 똑같은 시간 동안 비슷한 강도의 일을 한 친구에게 “난 별로 안 힘든데. 어제도 새벽 3시에 잤는데도 괜찮아. 엄청 피곤하고 그러진 않은데.”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뒤다. ‘다 나처럼 방전되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체력의 중요성을 실감한 것이다. 

물론 그 이후로 제대로 된 운동을 시작하기까지 몇 개월이 더 걸렸다. 그리고 수영이라는 운동을 시작한 지금도 그놈의 ‘저질 체력’이 내 수영 실력의 향상을 가로막곤 한다.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몸을 쓰는 직업이 아니라도,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는 직업이라도 어떤 일을 무리 없이 잘 해내기 위해서는 적절한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작가는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직업이 작가라고 해도, 가만히 앉아 글을 쓰는 일을 한다고 해도 체력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의지를 최대한 강고하게 할 것, 또한 동시에 그 의지의 본거지인 신체를 최대한 건강하게, 최대한 튼튼하게, 최대한 지장 없는 상태로 정비하고 유지할 것 - 그것은 곧 당신의 삶의 방식 그 자체의 퀄리티를 종합적으로 균형 있게 위로 끌어올리는 일로 이어집니다. 그런 견실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거기서 창출되는 작품의 퀄리티 또한 자연히 높아질 것,이라는 게 나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만화가 윤태호의 작품인 <미생>에서도 체력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말이 나온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야. 네가 후반에 종종 무너지는 이유, 데미지를 입은 후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귀가 더딘 이유, 모두 체력의 한계 때문이다.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미생, 윤태호

바둑 스승이 바둑을 배우는 장그래(주인공)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한다. 바둑도 마찬가지로 가만히 앉아서 바둑돌을 놓는 일이지만 그것을 잘하기 위해서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작품에서 하는 말 모두 무척 공감된다. 집중력과 사고력, 창의력이라는 주인공이 제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체력이라는 배경을 잘 다져놓아야 한다. 그 배경이 주인공을 방해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러니까 오늘도 열심히 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