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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책

수영장에는 '적'이 아닌 '벗'이 있다.<미움받을 용기>

미움받을 용기 1권과 2권을 모두 읽었다.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로 내용이 전개되는 방식을 통해 그들의 대화를 관찰하고 때로는 엿듣는 느낌을 느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보며 어떤 때는 철학자의 말에 수긍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청년의 말에 수긍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이 책의 청년처럼 철학자의 말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물론 이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움받을 용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경쟁이나 승패를 의식하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것이 열등감이야. 늘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고 이 사람에게는 이겼어, 저 사람에게는 졌어, 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네. 열등 콤플렉스나 우월 콤플렉스는 그 연장선상에 있지. 그렇다면 이때 자네에게 타인은 어떤 존재가 될까? 언제부터인가 자네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적'으로 느끼게 된다네. 즉 사람들은 늘 자네를 무시하고, 비웃고, 틈만 나면 공격하고 곤경에 빠트리려는 방심할 수 없는 적이고, 이 세계는 무서운 장소라고 말일세.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자네가 전에 말했지?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진심으로 축복할 수가 없다"라고 말이야. 그것은 인간관계를 경쟁으로 바라보고 타인의 행복을 '나의 패배'로 여기기 때문에 축복하지 못한 걸세. 하지만 일단 경쟁의 도식에서 해방되면 누군가에게 이길 필요가 없네. '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도 해방되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게 되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공헌할 수 있게 되네. 그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언제든 도움의 손길을 내어줄, 믿을 수 있는 타인. 그것이 친구가 아니면 무엇이겠나.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이 구절은 타인을 ‘적’이 아닌 ‘벗’으로 여기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고 나는 어떤지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가까운 사람,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대부분을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람 만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최대한 만남을 피했다. (내가 타인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타인이 나를 부정적으로 볼 것이라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때문에 타인과 함께 있을 때 기본적으로 위축되고 소극적인 행동 모드가 작동하고 있었는가 보다. 

아무튼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이제부터 사람들을 벗으로 인식해보자! 따뜻한 시선으로 보자!’고 결심했었고 지금도 항상 그런 시도를 하고 있다. 생각이 바뀌니 사람들이 귀여워 보인다. 어딘가에 걸려 넘어질 뻔한 사람도, 도서관 출입 카드를 제대로 찍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도 그냥 다 귀여워 보인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을 벗으로 보기는 어렵다. 나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을 어떻게 다정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난 보살도 아니고 그렇게 마음이 넓지도 않은데. 나에게 작게나마 피해를 주는 사람을 어떻게 온화한 태도로 대할 수 있을까? 도서관에서 키보드 덮개도 깔지 않고 자판을 시끄럽게 쳐대거나 여럿이 있는 장소에서 입을 가리지 않고 기침을 해대거나, 영화 상영 중에 시끄럽게 잡담을 하는 경우에는 망가진 내 기분을 몸소 느끼고 있노라면 도무지 그들을 벗으로 볼 수가 없다. 또 예전부터 가지고 있는 ‘나는 그냥 사람이 싫어요’ 모드가 다시 발동되면 모든 사람을 벗으로 보기는 어려워진다. 

<‘벗’으로 여기기>가 꼭 하고 싶지만 너무 어려울 때 도움이 될 만한 연습장소가 있다. 바로 수영장이다(물론 수영장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내가 다니고 있는 공공 수영장을 생각하며 이야기해보겠다). 최근 들어 수영장을 자주 가고 있지만 한 번도 눈살 찌푸리는 일이 있었던 적은 없다. 오히려 빙긋 웃을 일이 많았다. 

내가 만난 수영장 사람들의 모습을 짧게 소개해볼까 한다. 우선 형편없는 수영 실력을 가진 나에게 매일같이 피드백을 주는 분이 있다. 그분도 수영 연습을 하러 오시는데 항상 나에게 수영 팁이나 보완할 점을 알려 주신다. 그분 외에도 지나가면서 짤막한 피드백을 던지시는 분들이 많다. 그 모든 분들이 내 수영실력 향상에 일조하고 있다. 어느 날에는 수영복을 수영장에 비치된 탈수기에 돌리는데 ‘쿵쾅쿵쾅’하는 큰 소리가 났다. 그게 당연히 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지나가던 분이 “이렇게 소리 나면 탈수 안되는 거예요. 다시 소리 안 나게 돌려야 돼요.”라면서 탈수기 작동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분 덕분에 요즘도 제대로 탈수를 하고 있다. 이 외에도 미소를 자아내는 많은 분들을 만났다. 수영장 사람들이 먼저 나를 벗처럼 여겨주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곳만큼 <‘벗’으로 여기기>를 실천하기 쉬운 곳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오늘은 글쎄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고 있는데 속옷 색이 너무 예쁘다는 칭찬까지 들었다. 정말 친구처럼 여기지 않는다면 하지 못할 말이 아닐까?